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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3000V 충격 요법, 칼도 항암제도 없이 암을 없앤다

by thenofaceissue 2025. 4. 10.

 

  최근 고전압 전기를 이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치료법인 비가역적 전기천공법 (Irreversible Electroporation, IRE)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수천 볼트에 달하는 강한 전기 펄스를 암세포에 가해 세포막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고, 이로 인해 세포의 항상성(homeostasis)을 무너뜨려 자연사(아폽토시스, apoptosis)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며, 국내에서도 간암과 췌장암 치료에 적용된 바 있다.


1. IRE의 작동 원리

비가역적 전기천공법은 세포막에 전기장을 인가해 인위적으로 ‘전기적 구멍’을 만드는 기술이다. 전기 펄스는 수 마이크로초에서 수 밀리초에 이르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수천 볼트의 전압(최대 약 3000V)을 가하며, 세포막에 일시적인 또는 영구적인 구멍(nanopore)을 형성한다. 이로 인해 세포 내외의 이온 및 물질이 비정상적으로 교환되면서 세포는 정상적인 대사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

IRE의 가장 큰 특징은 비열적(非熱的) 방식이라는 점이다. 즉, 레이저나 고주파 치료처럼 고열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조직의 화상이나 손상이 적다. 이는 혈관, 담관, 신경 등 열에 민감한 기관 근처의 종양 치료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2. IRE의 임상 적용 사례

■ 간암 치료

2024년 2월, 세브란스병원 김도영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만득 영상의학과 교수팀은 IRE를 이용하여 국내 최초로 간암 환자에 대한 치료를 성공적으로 시행하였다. 이 환자는 간 내부 깊은 곳에 위치한 종양으로 인해 수술이나 고주파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IRE를 통해 정상 조직 손상 없이 종양을 제거할 수 있었고, 치료 후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 췌장암 치료

2025년 3월, 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은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IRE 치료를 시행하였다. 이들은 모두 기존 치료법으로는 생존 기간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고위험군이었다. IRE 치료 후 평균 생존 기간은 9개월 이상 연장되었고, 일부 환자는 종양 크기의 유의미한 감소도 경험하였다.

이처럼 IRE는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고위험 종양의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대체 치료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3. IRE의 장점과 한계

● 장점

  1. 정상 조직 보호: IRE는 열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혈관, 담관, 신경과 같은 중요한 구조물 근처의 종양을 치료할 수 있다.
  2. 정밀한 치료 범위 조절: 전기 펄스의 크기와 주기, 전극 위치에 따라 치료 범위를 정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3. 빠른 회복: 조직 손상이 적고, 전신마취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어 입원 기간이 짧고 회복이 빠르다.
  4. 재발 가능성 감소: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사멸시키기 때문에, 주변 조직의 변형이나 유전자 손상을 줄여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 한계

  1. 고가 장비와 전문 인력 필요: 고전압 펄스를 안전하게 조절하는 장비가 필요하며, 시술은 영상의학, 내과, 마취과 전문 의료진의 협업 하에 이뤄져야 한다.
  2. 심장 박동 간섭 위험: 전기 자극이 심장 리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심장 박동과 동기화하여 펄스를 조절해야 하는 등의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3. 적용 범위 제한: 모든 암종에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며, 주로 고형암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향후 전망과 과제

IRE는 현재 간암, 췌장암, 전립선암, 신장암 등 고형암 치료를 중심으로 임상 시험과 실용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FDA에서는 이미 일부 장비에 대해 승인을 내렸으며, 유럽과 한국에서도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향후에는 전기 펄스의 정밀 제어 기술, 면역 반응과의 결합 치료(ex. 전기 자극 후 면역세포 활성화), 환자 맞춤형 치료 모델 개발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또한 전기천공법과 기존 치료법(항암제, 면역항암제, 방사선)의 병합 치료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결론

3000V 고전압을 이용한 비가역적 전기천공법은 암 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고전압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방법이지만, 그만큼 기존 치료법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부위의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와 환자 모두에게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임상 사례와 기술 발전이 축적된다면, 이 기술은 ‘고치기 힘든 암’에 대한 중요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